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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칼럼] 회복은 함께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19-04-15 16:31:20

회복은 함께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울산중구정신건강복지센터 팀장 노승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중략)...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춘수의 에서

 

상대를 바라보고, 말을 건네고, 상대방의 답변을 듣는 것, 즉 질문은 상대방을 인정하는 기본적인 행위입니다. 그리고 그 행위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가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것 입니다.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이 기본적인 행위가 당연하고 마땅해 보이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다른 사람을 만날 때, 우리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을 마주할 때, 이 마땅한 행위를 하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저희 기관에서는 정신장애인들이 주 2회 함께 모여 한마음 프로그램에 참여합니다. 대략 10~15명 정도가 늘 참여하여 함께 운동도 하고, 독서도 하며,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참여하시는 분들 모두가 정신장애를 겪고 있습니다. 정신장애의 주요 증상 중 하나로 음성증상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증상의 완화를 돕는 것이 프로그램의 주 된 목적이기도 합니다. 음성증상을 쉽게 말하면, 있어야 하는 것이 없거나 부족한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의욕이 없거나, 감정의 표현이 약하거나, 무기력한 것들이 있습니다. 이처럼 음성증상이 심한 사람의 경우에는 어떠한 질문을 하더라도 아주 짧게 단답형으로 하거나 심지어는 답변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음성증상이 심했던 한 회원분에 대한 이야기(민정씨:가명)를 하려고 합니다. 평소 민정씨와의 상호작용은 일관되게 단답형이었고, 늘 똑같은 답변이 돌아왔었습니다. 예로, “오늘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하셨어요?”라고 물어볼 때, 그 날의 프로그램이 무엇이었든 상관없이 컴퓨터했어요라는 답변, 또 한 예로 프로그램이 마친 후 프로그램에 대한 소감을 물었을 때, 마찬가지로 일관되게 좋았어요라는 답변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랬던 민정씨가 최근 조금씩 변화되었습니다. 보헤미안 랩소디 영화를 본 날이었는데, “오늘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하셨어요?”라는 질문에 머큐리라고 영화 속 주인공 이름을 이야기 했습니다. 또 하루는 음악감상 시간에 직접 음악을 선곡하기도 하고, 빠른 템포의 음악을 따라서 흥얼거리기도 해서 저희를 놀라게 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저희 선생님들 모두 크게 놀랐고, 이 일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탐색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민정씨에게, ‘물어봐도 똑같은 대답을 할 것이 뻔한데, 민정씨한테는 물어볼 필요가 없어라는 생각으로, 민정씨에게 질문하려 하지 않고, 대화하려 하지 않고, 계속 배제해왔다면 지금의 변화는 결코 확인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민정씨의 입장에서는 늘 똑같은 대답을 하고 있지만, 민정씨의 마음 속에서는 나름대로 그 질문에 답하려는 수 많은 노력들이 있었을 것이라 추측이 됩니다.

 

우리가 상대방에 대해 쉽게 말이 안 통해라고 결론 내리고 상대방에게 다가가지 않는다면, 대화하려 하지 않는다면, 상대방은 그 순간 함께 할 수 없게 될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함께할 수 있는 가능성은 희박해집니다. 말은 잘 통하지 않더라도 분명히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상대방에게 상대방이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질문을, 상호작용을 해야만, 상대방도 이 세계에 함께 하려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계속해서 물어봐주는 사람이 있으니 더 답하려고 애쓰게 되고, 상대방에게 잊혀지지 않는 의미가 되기 위해 애쓰는 것입니다. 마치 김춘수의 꽃에서 말하는 것 처럼이요.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 쉽게 판단하는 것으로, 대화를 거부하고, 그로인해 상대방을 이 세계에서 배제시키는 폭력을 행사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정신장애이든, 그렇지 아니하든, 우리 마음의 회복과 건강은 배제되지 않는 것,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더 깊이있게, 더 명확하게 깨닫는 것으로 가능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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